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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님의 체험수기 '회복하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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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42회 작성일 16-06-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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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기까지
 
-박지영-
 
 
오래된 바느질 그릇에서 수첩 한 권을 발견하였다
그 수첩에는 십여 년 전의 시간들이 띄엄띄엄 기록되어 있었다.
내게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기록의 도움 없이 어제의 일인 듯 생생한,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지는 경이로운 사건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아슴아슴 흐려지는 것이 기억인데 이렇게 그 느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랍다.
내게는 아마도 그 경험이 지나간 과거형이 아니라 변함없이 머물면서 나를 이끌어 가는 진행형으로 적용되는 모양이다.
 
온순했으나 어려서부터 고집이 있었던 나는 무엇이나 쉽게 혹하지 않고 쉽게 기울어지거나 쉽게 가까이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이나 물건, 환경까지도 곧잘 낯가림을 했다
그렇게 쉽지 않았던 내가 십여 년이 지나도록 징소리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내가 받은 축복 중에서도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 한다.
 
나와 율본운동과의 인연에는 뜻하지 못했던 사연이 있다
아들 둘이 남다른 행복이면서 큰 희망이었던 내게 큰 아이에게 켜진 적신호는 일종의 불운 이었다. 대입 수능 성적 전국 90위권의 우수함과 맑고 어진 품성의 내 아들이 대학 재학 중에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돈벼락 벤처 열풍에 차출되어 망가지고 있는 사실을 떨어져 사는 어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실용적 신기술을 독보적으로 개발하여 발표한다는 설정에 맞추어 혹사당했고 어리고 연약하기만 했던 아이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가려운 피부 발진을 시작으로 그에 따른 수면부족이 가져다 준 집중력 저하는 수행능력 부족으로 이어졌고 홀로 넘어진 후에야 어미인 내가 알고 마른하늘에 날 벼락을 맞은 것처럼 혼비백산했으니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는 듯 했고 어미 잘못 만나 힘들어 하는 내 자식이 너무도 안타깝고 애달팠다
 
그렇지만 어미는 자식을 두고 절망 할 수 없었다.
아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이 나에게 분명히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어미의 사랑이 명약이 되어서 아이를 반드시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를 정화 시키는 기도의 힘을 인정하고 있었으며 신앙심을 갖지는 않았으나 마음의 자리가 우주와 일치한다는 불교적인 우주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미였기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을 걷고 있는 자식을 위해서 부처님께 기도했다.
아이에게 닥친 시련이 더 큰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하늘의 뜻임을 받아들이며 아이와 나 자신을 위로하며 두 손바닥을 벌리고 빈손을 들여다보며 혼자 중얼 거리곤 했다
‘이 손바닥에 얼마나 큰 진리를 담으시려 저의 귀한 자식을 상하게 하십니까?’
 
그렇게 아파할 때 율본운동의 징소리를 만났고 그때 나는 단순 명료한 명제가 있었는데 ‘어미가 청정해야만 내 아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소리에 관하여 짧은 지식이 있었는데 정월 대보름이 지난 후 농사가 시작되기 전 논둑에서 북, 징, 장고, 꽹과리로 구성된 사물을 울리면 해충이 없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를 아주 인상적으로 들었고 어쩌면 상당히 고차원적인 과학 즉, 초과학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소리의 파동과 공명의 효과를 나름 인정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율본운동에 사용되는 저 징소리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치유의 소리로 반드시 내 아이를 구해 줄 희망의 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몸 안의 60조 세포를 공명시켜 잘못 된 것은 버리고 새롭게 정화시켜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오직 징소리에 매달렸다.
 
정작 병이 생겨서 앉혀 놓은 아이에게는 눈 한 번 떠서 쳐다보지 못했다.
징소리를 앞에서 드러눕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벽에 등 한 번 기대지 않는 경건함으로 꼿꼿이 앉아서 눈을 감고 절체절명의 의지력으로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어느새 강력한 소리의 파동이 더운 여름날의 장대비처럼 내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고 메마른 흙이 물을 머금듯이 내 육신은 편안해 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온 몸과 마음으로 징소리의 파동을 맞았고 그 파동은 내 피부의 숨구멍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까지 활짝 열어젖히고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적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기(氣)의 흐름들이 내 두 팔을 타고 흘러내릴 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압전류가 내 팔을 감전시키는 듯 했으며 내 머리는 누군가 뚜껑을 열고 기운을 불어넣듯이 미세한 파동의 물결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눈과 코로는 알 수 없는 기운들이 풍선속의 공기가 빠져 나가듯 ‘꼬로록 꼬로록’ 소리까지 내면서 빠져 나왔다.
그 과정이 지나고 나니 급성 축농증을 앓았던 왼쪽 코로 하루 밤낮으로 맑은 물이 계속 흘려 내렸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눈자위 아래쪽에서 붉은 불길이 활활 타 올랐으며 화살이 양쪽 귀를 관통하였으며 내 머리 정수리에서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계속되었고 집으로 돌아와 반드시 누우면 발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내장을 훑고 정수리까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수련 아주 초기에 체험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하여 이상하다는 의심의 마음은 단 한 번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내 몸으로 체험한 어김없는 실제 상황이라는 그 자체가 중요했을 뿐이며 그러한 체험들은 막힌 곳부터 우선 뚫어주는 주도면밀한 자연치유의 과정임을 얼마 후에 치유의 성과를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쳐 졌다.
 
아이가 있는 서울로 오르내려야했던 나날들.
서울행 버스에서는 척추가 화끈 거리다가 불을 붙인 듯 뜨거워지는 현상이 나타나 옆 사람에게 민망할 정도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진동과 열기, 별의별, 오만가지 현상이 신체 어느 한 곳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지나고 보니 용의주도, 일목요연하게 치유하는 우리 인체의 신비함에 새삼 놀랍다.
 
곪고 있었던 마음의 상처를 징소리로 치유 받고 어긋나고 조각 난 인체를 재조립 하는 서비스를 받으면서 삶은 빨래 몇 가지 담긴 세수 대야를 들어 불 위에 얹을 수 없었던 허리가 나았다. 그리고 수 십 년 허덕이든 만성 피로, 잡다한 꿈에 시달리는 얕은 잠이 깊어졌고, 다시 잠들지 못할까 두려워서 잠 깨는 것을 가장 싫어했던 불면증이 사라지면서 눈을 감으면 바로 잠이 드는 놀랍고도 신통한 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인체 요소요소마다 다르게 질병의 증세마다 다르게 행하는 치유 운동을 감히 글로서는 다 표현 할 수 없지만 나부터 먼저 정화되어 아들을 회복시키는 힘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그 세월을 살았던 어미는 오히려 아들이 받은 고통 덕분으로 소리치유를 받는 행운을 얻었으며 무수히도 많았던 질병들은 내 몸 안의 의사가 행하는 신묘한 치유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좋아졌다.
소소하게 안고 살든 잔 걱정거리들은 ‘그까짓 것’ 하면서 쫓아버리는 방법까지 터득하면서 징소리를 사랑한지 몇 년이 흘렀을까?
‘이제 졸업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날.
수련 중 나의 눈 속으로 빛을 머금은 곧고 긴 길이 뻗어 나갔고 그 길로 빨려 들어가는 찰나의 황홀감을 체험한 후 나는 졸업을 했다.
어쩌면 졸업이 아니고 제적 처분이었는지 모른다.
그 후로 일념으로 받아들인 징소리의 파동이 가져다주는 강열한 느낌은 사라졌으며 처음에는 다 되었다는 안도의 한 숨을 쉬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먼 길을 무사히 걸어서 제자리로 찾아 왔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아쉬워졌다.
다시 맛보고 싶은 기쁨의 길을 찾아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동안의 수련 과정을 더듬어 보면 결과적으로 어머니를 구출해 준 우리 아이는 그 당시 산업체 근무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중이어서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처지여서 단 기간 집중 수련을 받았는데 반듯한 자세로 나와 함께 자리를 지켰고 신통하게도 중도 멈춤 없이 학업을 유지했으니 참으로 아슬아슬 하면서도 감사한 나날이었다.
그 후. 나는 도시를 떠나 산골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연고지 없는 이주였으나 정착은 순조로웠고 마치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움의 손길이 있었으며 어디선가 방향을 잡아서 이끌어 준다는 느낌이 생겼다. 그리고 군복무를 무사히 끝낸 아이는 석사 학위를 마친 후 두 세 곳의 연구소 생활을 거쳐서 현재 박사학위 마지막 과정에 있고 외국 유명 저널에 논문도 실렸으며 미국의 유수 대학 교수들로부터 박사 후 다음 과정을 받아주겠노라는 회신을 받아 둔 상태에 이르렀다.
몇 해 전 어여쁜 아가씨와 결혼하여 무탈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니 반짝이든 두뇌가 급격하게 퇴색된 아픔을 딛고 거북이걸음을 걷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감사함과 항상 건강하고 편한 인생이기만을 바라는 마음만 간절할 뿐 다른 욕심은 없다.
 
지금도 아주 가끔씩 율본운동 수련원에 간다.
원장님의 인간적 진심을 알기에 육체가 몹시 지치고, 삶이 힘들어 마음이 약해지는 날이면 찾아 갈 곳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생긴다.
 
그동안 수련중인 많은 사람들의 치유운동을 눈여겨 보아왔다.
그들의 환희심이 얼마나 클까? 요새 언어로 ‘나는 알지요.’ 속으로 웃음 짓는다.
내가 강력하게 체험한 환희심이 저마다의 얼굴에서 다시 피어나듯 저마다의 표정이 새삼 경이로울 때가 있다.
각자의 사연만큼이나 다양한 치유효과를 보는 사람들을 긴 시간 동안 내 눈으로 지켜보았으며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곳 수련원에 밀물 따라 들어 왔다 징소리 울리는 포구에 정박하여 안정을 찾은 사람들은 다시 썰물 따라 가듯이 떠나갔다.
급한 불을 껐으니 한숨 돌리고 다시 찾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떠난 사람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율본운동의 징소리를 애호했던 내 눈에는 그들이 안타까워 조언해 주고 싶다,
 
그렇게 쉽게 접하고, 그렇게 쉽게 떨쳐내지 마십시오.
수련 과정에서 각자 어떤 현상을 체험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체험들은 당신의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숨겨 놓은 무의식속 당신이 다시 당신에게 전해 준 메시지였습니다.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깊은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율본운동의 징소리는 새로 깨어나게 해 줍니다.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모른다는 이유로 ‘없어요.’라는 세 글자로 단정 짓지 마십시오.
당신의 내면세계에 생명의 에너지를 움틔우는 봄비가 징소리를 통해 분명 내렸는데 그것이 생명수임을 모르고 목만 겨우 축이고 중도 하차해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단언컨대, 율본운동의 징소리는 생명을 살리는 참 아름다운 음악이었으며 수 없이 많은 우주의 파동을 특별히 나에게 맞추어 제공하는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참다운 메신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사운드힐링 율본 운동이 정책적인 검증의 절차를 거쳐 질병의 고통에서 힘들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징소리의 혜택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소리치유를 담당하고 계시는 큰 의사 선생님인 원장님께서 오래 오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엎드려 비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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