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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득님의 체험수기 '율본운동은 내 인생의 동반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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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96회 작성일 15-05-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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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본운동은 내 인생의 동반자

 

김 정득

 

저는 50대 중반으로 아내와 두 자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며 기둥입니다.

율본운동 수련원을 찾는 이유의 대부분은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로서 가벼운 질환으로는 근골격계질환, 척추질환, 불면증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질환에서부터 암을 비롯한 희귀 난치성 질환 그리고 저처럼 병명조차 알 수 없는 질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 병이 나면 병원을 가야지 왜 그런 곳에서 병을 고치려 하는지 한심하게 바라보시겠지만 저와 같이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들은 지푸라기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제도권 의료를 벗어난 다른 치료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게 되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행복이 주어지겠지만 검증되지 않는 잘못된 자연치유요법으로 대부분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저 역시 목 뒤에 불쑥 튀어 올라 딱딱하게 굳어 가는 ‘혹’ 때문에 많은 시간과 돈을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율본운동 수련원을 찾게 되었지만 저처럼 비록 ‘암’과 같은 무서운 질병으로 생명의 위협은 받고 있지 않지만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료로 해결점을 찾지 못해 하루하루 죽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도 살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저와 같은 환자들에게 다양한 자연치유요법을 국가가 제공하여 힘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부터 2010년 5월 초순 율본운동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는 젊은 시절 등산이 좋아 전국의 명산을 누비고 다녔으며 암벽과 빙벽등반 나름 여러 가지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다보니 몸은 그야말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몸 짱 이었습니다. 성격 또한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자신감이 넘쳤지만 반대로 가족들과는 소통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내 위주로 처리하는 지극히 이기의적 생각을 가진 못된 아비였고 남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이 흘러 어느 덧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하던 사업이 서서히 침체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이 점점 이상해짐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어지러움이 밀려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화를 낼 정도로 몹시 예민해졌으며 한번 화가 나면 그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그야말로 육체의 병이 약도 없는 마음의 병으로 이어졌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게 되었고 못난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점점 저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로 인해 아내와 두 아이들도 마음의 상처가 병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저는 저대로 저를 이해 해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 병의 증세는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 되어갔고 결국은 가족들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불안증, 공황장애, 당뇨병, 어지럼증, 척추질환,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등등 정말 믿기지 않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고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몸은 망신창이가 되어 신경정신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 병상에 누워 보니 두 아이와 못난 남편 만나 고생하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이미 저는 제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신세가 되었고 오히려 짐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차도 정확하게 모른 채 의사의 지시대로 신경 안정제를 먹고 마취 유도제인 프로포폴(Propofol) 주사를 맞으며 지내다 증상이 완화되면 퇴원을 하였고 그 다음에는 통원 치료를 하면서 약을 복용했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또 증상이 나타나고 약을 먹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증상이 더 심해지면 다시 입원하는 것이 저의 비참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을 잘 때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눕지를 못하고 앉아서 졸다가 다시 누우면 머리에 압박이 가해져 어지럽고 터질 것 같은 고통으로 다시 앉아서 베개를 붙들고 졸다가 날이 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자체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별한 치료법을 찾지 못한 채 숨이 막힐 듯한 시간들은 계속 흘러갔고 그러던 어느 날 어깨와 목이 너무 아파 목을 만져보니 뒷목에 부은 듯한 제법 큰 ‘혹’ 같은 것이 만져졌습니다. 내 손 아귀를 가득 채울 만큼 부은 혹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차 더 딱딱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고 혹 때문에 목을 뒤로 젖히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의학적인 지식은 없으나 알 수 없는 ‘혹’이 경추의 신경을 눌러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 것 같았고 이 ‘혹’을 제거 하면 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신경 정신과 치료는 접어두고 용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수소문하여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지만 목덜미의 ‘혹’은 그대로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신의 인턴 과정 때 저와 같은 환자를 한 번 보고 지금 보게 되었다면서 수술로 제거 할 수 있는 ‘혹’은 아니고 스트레스로 인해 근육이 굳어서 생긴 것 같다는 애매모한 진단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직하게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 알아 낼 수가 없다고 해야 하는데 딱히 할 말이 없으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에 실망은 거듭되었고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제도권 의료를 벗어난 민방요법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돈만 들어가고 점점 목 아래 등쪽의 근육까지 조금씩 더 굳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한결같이 병명도 없고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으며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마저도 가질 수 없는 절망감으로 힘들게 버텨가고 있을 즈음에 지인의 선배로부터 ‘율본운동 수련원’을 소개 받았습니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한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면서 수련원을 찾게 되었는데 주위 회원들의 면면을 보니 질병의 고통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 같이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데... 수련의 결과로 저렇게 다들 혈색이 좋은 것일까? 나도 수련을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저의 첫 수련은 의문과 호기심으로 시작 되었지만 아쉽게도 남들처럼 합장한 손바닥이 벌어지는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허리가 좋지 않아 단 5분도 바로 앉아 있지를 못하는데 수련 4시간동안 화장실 한 번 안가고 꿋꿋이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생각은 비록 남들처럼 인체가 저절로 움직이는 신비스러운 경험은 못했지만 긴 시간 동안 부실한 허리를 바로 세우고 앉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소리에 반응하는 내 인체의 신기한 체험이었고 지금까지 수련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 첫 날의 믿음이었습니다.

 

둘째 날, 셋째 날... 수련은 계속 되었지만 손바닥에 기감을 느끼는 정도에서 조금 더 발전하는 날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두 팔이 움직이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남들처럼 온 몸이 요동을 치는 치유 동작은 없었지만 때때로 원장님의 인생철학과 회원들의 치유 경험담을 듣는 재미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치유동작 상태를 직접 확인해서 병의 원인과 진행상태, 그리고 치유 방법을 설명해 주시는 원장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수련의 길을 걷고자 하는 선배 회원님들의 덕분에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남들처럼 치유의 기쁨이 찾아오겠지 .... 치유동작이 없어도 병이 치유 되었던 여러 회원들의 사연들을 들려주시며 힘을 주고자 하시는 원장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날 쯤에 저에게도 서서히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터질듯 한 머리의 압박감과 통증, 어지럼증, 요통 등이 완화되어 갔고 육체의 고통이 해소 되면서 동시에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기 시작하여 가족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로움. 그야말로 부드러운 남자가 되어 갔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수련 과정에서 육체의 고통이 마음의 병이 되고 마음의 병이 육체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진리 즉, 마음과 육체는 하나임을 깨달았고 다른 사람처럼 육체를 움직이는 치유 동작 보다는 지난날의 나를 뒤돌아보며 후회와 잘못을 용서 받고자 하는 마음의 기도를 수 없이 하며 마음의 깨달음을 먼저 얻고자 노력 했습니다 . 

 

수련 1년 정도가 지나자 목덜미 아래 등 쪽으로 굳어진 근육이 먼저 풀리기 시작하더니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목 뒤의 혹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더 흘러가니 보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거의 정상 상태에 가까워졌으며 그토록 저를 힘들게 했던 여러 가지 질병의 증상들은 거의 완쾌되어 잠도 잘 자고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율본운동과의 인연도 4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김해에서 함안까지 빠지지 않고 수련을 했던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저에게 찾아 온 육체적인 고통은 저의 마음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고 내 몸 안의 의사를 통해 진정한 치유의 의미를 터득함으로서 가정의 화목을 다시 찾게 되었으며 덤으로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면서 매출도 크게 향상되어 생활의 안정도 찾았습니다. 그리고 율본 운동의 혜택은 저의 가족에게도 있었습니다. 변해가는 저를 보며 같이 수련을 하게 된 사랑하는 저의 아내는 변비와 불면증을 해결 하였고 이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저의 딸은 생리통과 요통을 아들은 알레르기성 비염과 축농증을 고쳤습니다. 온 가족이 다 혜택을 받았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지만 아직도 주위에는 분명히 현대의학으로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음을 수 없이 답습하고도 병원을 의지하며 고통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환자들이 많이 있음에도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저의 부족함이 항상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율본운동과 인연이 되어 내 몸이 나를 치유하는 최고의 의사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되어 고통에서 벗어나는 현대의학의 달콤한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해 수련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의 일처럼 안타까울 뿐입니다. 원장님께서는 병이 치유 되는 것도 때가 있어 그 인연 따라 오고 가는 것이니 아쉬워 할 이유가 없다고 하시지만 인연도 내 마음 먹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하며 빨리 병만 낫겠다는 생각 보다는 수련을 통해 나를 뒤돌아보는 마음 수련부터 먼저 해 보신다면 그 마음이 내 육체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됨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제 율본 운동은 저와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이며 참된 진리를 깨우치게 해 준 스승으로 항상 함께 할 것이며 율본 가족 여러분들도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함께 수련하여 원장님의 가르침대로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율본운동 체험수기 모음집 -행복한 체험-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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